이솝이 한국의 명절인 추석을 기념하며 사람과 사람 사이의 단단한 유대, 그리고 그 온기를 품어내는 공간에 주목합니다. 전 이솝 스토어에서 펼쳐지는 이번 하비스트 캠페인은 오랜 세월 이어져 온 한국의 전통 짚풀공예를 중심으로 정겨운 일상의 풍경을 연출합니다.
특히 엄선된 스토어에서 선보이는 하비스트 설치는, 자연 그대로의 거칠고 불규칙한 질감을 온전히 간직한 볏짚, 그리고 완성된 멍석과 함께, 한 지붕 아래 소중한 이들이 나누는 온기 속으로 방문객들을 초대합니다. 볏짚은 사람 사이의 화합을 은유하며, 저마다 다른 불완전한 올들이 서로를 지탱하며 견고하게 엮이듯, 비로소 쉽게 끊어지지 않는 단단한 힘과 진정성 있는 아름다움을 나타냅니다.
함께 공개되는 캠페인 필름은 짚을 엮어내는 장인의 리드미컬한 손길을 담아냅니다. 이어지는 장인과의 대화에서 최석봉 장인의 30여 년간 지켜온 전통 짚풀공예의 삶과 작품 ‘멍석’에 담긴 공동체의 의미, 그리고 함께 모일 때 피어나는 단단한 유대의 힘에 대해 알아보세요.
이번 이솝 캠페인의 주제는 '하나되어 모여 앉는 자리'로, 서로 다른 존재들이 함께 어우러지며 만들어내는 조화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여러 가닥의 볏짚이 엮여 하나의 형태를 이루는 짚풀 공예 역시 그 모습과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작업 과정에서 마주하는 ‘조화로움’은 어떤 모습이며, 이것이 추석이라는 명절이 지닌 공동체 정신과 어떻게 맞닿아 있다고 보시나요?
짚풀공예에서 사용하는 일종의 밧줄인 - '새끼'는 볏짚 한 가닥만으로는 만들 수 없고, 여러 가닥의 볏짚이 함께 엮여야만 완성됩니다. 이렇듯 서로에게 의지하며 점점 강해지는 과정이야말로 가장 본질적인 의미의 조화라고 생각합니다. 각기 다른 성질의 가닥들이 모여 하나의 명확한 기능과 형태를 만들어내듯, 사람 역시 함께 연대하고 모일 때 더욱 견고해지는 부분이 있어요.
이번 캠페인에서는 작가님의 멍석을 중심으로 선보이게 되었습니다. 작가님께 멍석은 어떤 개인적, 문화적 의미를 지닌 물건인가요?
과거에 멍석은 가족이 둘러앉아 머무는 자리이기도 하고, 곡식을 말리거나 아이들이 놀던 생활의 공간이기도 했어요. 말하자면 삶이 펼쳐지는 바닥이자 일상의 무대였던 셈이죠. 어릴 때는 대가족이 많아 어느 집이나 멍석을 필수적으로 구비해 두었습니다. 비를 피해 처마 밑에 잘 두었다가, 여름이나 가을이면 마당에 넓게 펼쳐서 수확한 곡식을 말리곤 했지요.
특히 한여름 저녁이면 마당에 멍석을 깔고, 그 옆에 쑥이나 젖은 풀을 태워 연기만 나게 하는 모깃불을 피워 둔 채 온 식구가 둘러앉아 식사를 했습니다.
밤이 깊어져도 방으로 들어가지 않고 멍석 위에 그대로 누워, 홑이불 하나를 덮고 하늘의 별을 세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잠들곤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한여름 밤의 낭만 같은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돌이켜보면 멍석은 단순한 생활 도구가 아니라, 사람들이 함께 시간을 나누던 공동체의 자리였습니다.
멍석 외에도 함께 선보이게 될 ‘둥구미’는 일상의 매 순간과 밀착된 유용한 살림살이였지요. 둥구미가 가진 형태적 특징과 더불어, 생활 속에서 어떻게 다채롭게 쓰였는지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둥구미에 대해 어릴 적 가장 깊이 떠오르는 모습은 다름 아닌 ‘나눔’이에요. 예전에는 어머니께서 돌담 너머로 이웃과 음식을 주고받을 때 이 둥구미에 마음을 담아 나르시곤 했거든요. 크기에 따라서도 쓰임새가 참 다양했어요.
아주 작고 촘촘하게 짠 둥구미에는 귀한 달걀을 안전하게 보관하곤 했습니다. 달걀이 무척 귀해 명절 선물로 알꾸러미를 주고받던 시절이었습니다. 할머니께서는 달걀이 생길 때마다 둥구미에 서너 개씩 소중히 모아두셨는데, 아이들이 마음대로 꺼내 먹지 못하도록 꿀단지와 함께 손이 닿지 않는 높은 곳에 올려두시던 기억이 납니다.
그보다 넉넉한 크기의 둥구미에는 이듬해 농사지을 때 쓸 씨앗을 담아 파종을 준비하거나 곡식을 채워 보관했고, 고구마 같은 구황작물을 담아두기도 했습니다.
예전의 둥구미는 단순히 물건만 담아내던 그릇이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그 속에는 계절과 먹거리가 담겼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따뜻한 정이 가득 담겨 있었죠.

짚풀은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는 소박한 재료이자, 오랫동안 사람들의 삶 가까이에 머물러온 존재이기도 하지요. 작가님께서 이 친숙하고도 일상적인 소재에 매료되어 평생의 업으로 삼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어릴 적 농촌에서 자란 저에게 짚을 만지는 일은 부모님이나 동네 어른들, 조부모님까지 누구나 행하던 일상의 노동이었습니다. 어릴 적 마당에서 할아버지가 새끼를 꼬던 손의 움직임이 아직도 기억나요. 그땐 다들 먹고살기 위한 생활 방편으로 짚을 만졌던 건데, 요즘에는 ‘짚풀공예’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네요.
이곳에 터를 잡기 전 서울 잠실에 오래 거주했는데, 성당에서 크리스마스 시즌마다 매년 새로 만드는 마구간의 초가 ‘구유’를 제작하는 일을 우연히 맡게 되었습니다. 그 작업을 마주하며 이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던 것 같습니다. 제 특징이 있다면 기술을 누구에게 전문적으로 배운 적이 없다는 거예요. 동네 어른들의 손짓을 어깨너머로 보았던 기억을 머릿속에 담아두었다가, 밤을 새워 가며 혼자 연습하고 반복하는 과정을 통해 손의 감각을 몸으로 체득했습니다.
작가님께서는 '나는 전통을 현대에 이어가며, 자연과 전통이 우리 삶 속에 함께 머물기를 바란다'고 하셨습니다. 정교하게 직조된 짚풀 기물이 현대 공간 안에서 사람들에게 어떤 경험으로 다가가길 기대하시나요?
짚풀은 과거의 유물이기도 하지만 현대의 것이기도 합니다. 언제나 사람을 정서적으로 편안하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인공적인 마감재로 가득 찬 현대 공간일수록 오히려 자연의 날것 그대로의 질감이 더욱 절실해집니다. 말하자면 플라스틱 시대의 반대편에 서 있는 아날로그 감성인 셈입니다.
자연과 공존하던 선조들의 지혜 속에서 손의 문화가 점차 사라지는 현실이 늘 아쉽습니다. 짚풀공예는 속도의 기술이 아니라 오랜 시간을 축적하는 문화입니다.
저는 볏짚을 재배할 때 풀이 아무리 무성해도 농약을 쓰지 않고 일일이 손으로 뽑아내며 농사를 짓습니다. 그렇게 처음부터 정직하게 시간을 들여 길러낸 볏짚을 다시 손으로 엮어냅니다. 눈앞의 편리한 결과물만을 좇는 시대 속에서, 이 작업을 통해 사물의 시작을 감각하는 일, 그리고 시간을 들이는 문화의 숭고한 가치를 계속해서 전하고 싶습니다.
‘모두 다 ‘나’가 아니고 ‘우리’였다.’
피천득










